노란봉투법 불씨 되살린 법원…尹 거부권 행사 '무의미' 될까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4-01-25 10:25   수정 2024-01-25 10:53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이후 경영계는 한숨을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 결단이 올해 선고될 대법원판결에 따라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면서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3부는 24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CJ대한통운은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특수고용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란봉투법 뒤에는 CJ대한통운 사건
노란봉투법, 즉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배경에는 이번에 선고된 CJ대한통운 사건이 있다.

지난 2021년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하청) 소속 택배기사들로 이뤄진 택배노조가 원청 격인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 CJ대한통운과 교섭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교섭을 거부당하자 택배노조는 노동위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2021년 중노위는 초심을 뒤집고 'CJ대한통운이 하청(대리점) 소속 기사들로 이뤄진 택배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직접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라면 교섭의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는 경영계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결국 수많은 하청 노조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심지어 원청이 이를 거부할 경우 형사처벌까지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처럼 수백, 수천개의 하청이 있는 기업들에는 엄청난 파급력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CJ대한통운은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해 1심도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주면서 충격을 던져줬다.

이 판결 즈음부터 야당과 노동계의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개정 움직임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 용접공 유최안 씨가 조선소 독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며 점거 파업을 벌이면서 원하청 교섭 이슈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만 갔다. 결국 야당도 노란봉투법 발의에 착수했다.

당초 야당이 발의할 계획이었던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은 당초 불법 파업 등을 저지른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하지만 법안 수정 과정에서 노조법 개정안 2조는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인 '사용자'를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개정하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이는 CJ대한통운 사건에서 중노위와 1심이 언급한 사용자의 개념을 그대로 입법화하는 내용이다.

야당이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제동이 걸렸다.

경영계가 간신히 한숨을 돌리나 싶었지만, 24일 CJ대한통운 사건 2심에서 회사 측이 패소하면서 재차 비상이다. 대법원에서 이 판결이 확정될 경우 현행 노동조합법이 개정된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법원이 노란봉투법의 불씨를 되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4일 성명을 통해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기업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라는 기존 대법원 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에 따르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취지가 몰각될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은 하청노조의 원청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파업, 그리고‘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한 소송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윤석열 대통령이 행사한 개정 노조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부당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다"며 "민주노총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법원 판결에 따라 원청 교섭 요구 투쟁을 전개하고 노조법 2·3조 개정을 쟁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계 "현대중·CJ대한통운 대법 판결에 사활 걸어야"
CJ대한통운의 상고는 확실시된다. 회사 관계자는 "설연휴 전으로 상고할 것"이고 말했다.

이로서 하청 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권 이슈, 즉 노란봉투법 이슈를 내걸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은 두건이 됐다. 수년전에 같은 쟁점으로 제기된 'HD현대중공업(구 현대중공업) 사건'이 이미 대법원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근로자들로 이뤄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지난 2018년 4월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청구의소'를 제기했다. 하청업체 근로자들로 이뤄진 하청 노조가 원청인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낸 소송이다. HD현대중공업이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지배 결정할 수 있으므로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 2심에서는 회사가 승소했다. 사내하청업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등 실질적인 독립성을 갖추고 있고, 하청에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걸 두고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권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였다.

1, 2심 진행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이 이처럼 중요한 사안으로 번질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며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현대중공업 사건'은 올해 선고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만약 이 사건에서 노조 측이 승소하면 사실상 노조법 개정안 2조의 핵심 쟁점 조항이 대법원에서 사실상 입법화되는 셈이다. 공수가 교대되면서 경영계가 되레 노조법 개정을 요구해야 할 판이 된다.

대기업 원청의 경우 2차, 3차 하청에 속한 수십, 수백개의 노조와 일일이 교섭을 하게 되면서 교섭 방식과 관행이 완전히 뒤집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게다가 교섭권이 있다면 쟁의권도 갖게 된다. 하청노조가 하청이 아닌 원청 사업장에서 파업 등 쟁의행위를 벌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일각에서는 "회사가 교섭과 파업 대응만 하다가 끝날 것"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본의 아니게 '노조법 수호'의 최전선에 서게 된 현대중공업은 1, 2심 승소를 이끈 법무법인 태평양에 추가로 김앤장 법률사무소까지 선임하면서 총력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에 사측이 지고 올라온 CJ대한통운 사건까지 겹치면서 경영계의 고민은 깊어 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 산업와 노사관계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면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희성 강원대 교수는 "HD현대중공업 사건도 선고가 늦어지는 사이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입법 문턱까지 가는 등 대법원에 대한 압박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며 "산업계를 뒤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사건이라면 소부가 아니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전체 대법관들이 결정하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 민경진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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